나는 공연 앉은뱅이다. 더러 크고 작은 공연을 보는데 모든 사람들이 흥분해서 날뛸 때도 나는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공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고 공연을 즐긴다. 단지 공연을 즐기는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앉은 채로도 충분히 흥분하고 즐거워하고 가슴 벅참을 만끽한다.

단연코 나는 이승환의 팬이 아니다. 가지고 있는 이승환 음반이라곤 번째 앨범인지도 모르는 'HUMAN' 이 전부다. 내게 이승환은 키가 작고, 얼굴이 동안이고, 콘서트를 자주 하는 가수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하다. 콘서트를 자주 하는 걸 보니 라이브에는 자신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어느 TV쇼 프로그램에선가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다. 내 머리 속의 이승환 대표곡은 '덩크슛'에서 멈춰 있다. 그런 내게 이승환 콘서트 초대권이 생겼다. 운 좋게도 롯데시네마 동성로관 설문조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초대권 2매를 받았다.

콘서트에 가기 전, 나는 최근의 이승환 노래를 찾아서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콘서트에 가기 위해 음악을 듣고 있다보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노래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곧잘 지겨워져 플레이어를 꺼버리곤 했다.

이승환 소극장 콘서트 2008 티켓

콘서트 당일. 좌석이 1층이었으면 했는데 2층이었다. 다행히 무대가 한 눈에 잘 보여서 안도했다. 예술 공연장이어서 그런지 앞 뒤 간격이 무척 좁았고, 앞 좌석에 앉은 사람의 머리가 발 끝 바로 앞에 위치했다. 그래서 무대는 잘 보이지만 여기서 어떻게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사람들이 일어서서 콘서트를 즐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콘서트가 시작되자 좌석 간격이나 높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몇몇 무리가 로켓처럼 자리에서 튕겨져 올라왔다. 굉장한 열혈 팬인가보다. 나는 그냥 자리에 꼿꼿히 앉아 시선을 무대로 옮기고 천천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1층은 이미 시작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있었고, 2층은 주로 초대된 사람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반응이 느렸다.

1초, 1초, 1초, 1초, 1초, 1초...... 시계 바늘이 몸을 떨며 움직이다 그대로 멈췄다. 순간 주위가 잠시 느려지나 싶더니 원래의 속도를 회복하듯 다시 빨라졌다. 나는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며 영화 '원티드'의 주인공처럼 크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대체 내가 어떻게 서 있는 것이죠?"

'환'렐루야. '환'장할 일이다. 십수 년 간 공연 앉은뱅이를 자처하던 내가 어느 새 벌떡 일어나 그 작은 공간에서 정확하게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폴짝폴짝 뛰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이승환의 작은 체구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받아, 다시 열기와 땀과 비명으로 발산했다. 미처 발산하지 못한 남은 에너지로는 중력을 거스르려 애쓰며 앉은 자리를 힘차게 박차고 있었다.

장장 3시간의 콘서트. 이승환은 지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는다. 나도 지치지도 않는다. 어느 새 이승환 골수 팬들에게 동화되어 이승환의 열정과 관람객들의 열정을 골고루 나눠가졌다.

콘서트가 끝나고 나자 비로소 등줄기에서 식어가는 땀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식지 않는, 여전히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콘서트를 위해 이승환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한 눈에 알 있었고, 초대권으로 콘서트를 본 게 미안할 정도로 매우 즐거웠다. 왜 그를 콘서트의 황제, 라이브의 황제라 부르는지 제대로 실감했다. 그렇게 콘서트 가수 이승환은 일어서지 못하는 공연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서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빌어 5차례나 통화를 하면서도 매번 친절한 목소리를 잊지 않으셨던 롯데시네마 동성로관 이벤트 담당자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1. 경찰들도 감탄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이승환의 공연 현장 속으로~

    Tracked from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2008/08/04 13:48

    어제 가평 자라섬에서 MBC 환경콘서트 '함께 하는 꿈 2008'이 개최되었습니다. 다른 쟁쟁한 가수들도 많이 참여했었지만, 가장 화려한 무대 매너를 보여주셨던 가수 이승환씨의 공연 모습을 먼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승환씨의 열정적인 공연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MBC 환경콘서트 '함께 하는 꿈 2008'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등장한 이승환씨. 복장부터 예사롭지 않습니..

  2. 맨큐 2008/08/04 13:49 수정삭제

    아, 3시간의 공연..
    꼭 참여해 보고 싶네요~ ^^

    • Marvin 2008/08/10 14:43 수정삭제

      이승환은 정말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가수라는 걸 느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콘서트도 가고 싶네요. ^^

  3. ginu the grouch 2008/08/05 01:13 수정삭제

    3시간 밖에 안 하고... 공연 시간이 줄어들고 있네요. ㅎㅎ
    올해는 공연 보러 갈 수 없는데, 부럽습니다. ㅅㅅ

  4. 235 2008/08/24 17:46 수정삭제

    같은날 1층에 저도 있었습니다~_~
    524때도 마흔살 된 저희 이모랑 같이 공연장에 갔는데
    이모 역시 앉은뱅이를 자처하던 분이셨는데 열광하시는 모습에 뿌듯했답니다^ㅅ^

    정말 환님의 공연은 국을 다 돌아도 힘든걸 잊게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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